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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복음주석
작성자 우영일목사 작성일2008.03.19 조회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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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주석

누가 1장 주석
누가복음서문(1:1-4)에 데오빌로 각하가 수신인으로 나타나는데 사떵행전1:1에도 두 번째 편지의 수신으로 나타난다. 이와 더불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유사성이 많이 있다는 견해가 받아들여지고 있어 원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하나의 책이었거나 한 사람(누가)이 저자라고 알려지고 있다.바울은 누가를 '사랑 받는 의사'(골4:14)로 소개했으며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의학 용어들이 많다(눅4:38, 눅18:43, 눅22:44과 행3:7, 행4:22, 행9:18, 행12:23, 행13:11, 행28:8 등). 또한 누가의 마지막 부분과 사도행전의 시작부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기 때문에 사도행전 역시 누가의 기록으로 보고있는 춰이 일반적이다.누가는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 사랑이라는 것을 말하고 이것은 전체에 걸쳐 흐르고 있다. 그런데 누가는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대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수신인 데오빌로 역시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른다. 마가와 마찬가지로 누가 역시 이방인을 위한 복음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누가의 구속역사는 유대인에게 한정하지는 않는다. 누가복음에만 있는 사마리아인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고(눅10:30-37), 시므온쟀 찬송 속에도 이방인을 언급하고(눅2:32), 예수께서 사렙다의 과부와 수리아인 나아만과 같은 이방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눅4:25-27).누가복음은 예수의 기도를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이 적고 있다(눅3:21, 눅5:16, 눅6:12, 눅9:18, 28, 29, 눅10:21, 22, 눅11:1, 눅22:41이하, 23:46). 이중 누가복음에서만 나타나는 기도가 일곱 개나 된다. 또한 찬양에 대해서도 기록하는데 영광 송(눅2:14), 마리의 찬양(눅2:29이하), 그리고 은혜 받은 사람들이 자주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눅2:20, 눅5:25, 26, 눅7:16, 눅13:13, 눅17:15, 눅18:43). 누가복음은 죄인들과 병자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깊은 관심도 가지고 있다. 누가 자신이 의사였기 때문에 그런지 병 고침에 대한 부분을 자세히 다루고(눅1:57, 눅4:27, 눅4:35, 눅5:20 등), 탕자의 비유(눅15:11-32)을 비롯해 세리장 삭개오의 구원(눅19:1-10), 십자가에 달린 강도의 구원(눅23:39-43) 등은 누가복음의 특징이다.
1:1-4 저술의 방법과 목적
누가복음의 머리말은 빼어날 정도의 문장력과 문학적으로 흠이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많은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누가의 서언은 여러 사람이 예수께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도 신중함으로 여러 자료들과 내용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서 썼다고 진술한다.1절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은 누가복음 전체에 걸쳐, 예수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보여주신 그의 활동과 십자가의 죽으심, 하나님의 사랑과 부활의 역사를 말한다. 아울러 이 일에 목격자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한다.사실 pragmavtwn(프라그마톤)은 '사건, 행위'가 이루어진 말로 명사(복수형)로 '사건들'을 말한다.3절 근원 a[nwqen(아노-덴)은 '시간적인 시작'을 의미하고 있으므로 누가는 처음부터 시작하고 있음을 뜻한다. 멀리 보면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요 가깝게는 예수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부터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 부분을 다른 기자보다 더 세밀히 다루고 있다.자세히 ajkribw''(아크리보-스)는 '정확하게, 신중하게'(행18:25, 엡5:15, 살전5:2) 차례대로 kaqexh''(카덱세-스)는 부사로서 시간적으로 하나하나를 의미한다.데오빌로는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누가의 후원자 였거나, 이 책을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일 것이다. 각하 kravtiste(크라티스테)는 경칭의 하나로 보여지며 높여(존경)하여 부?는 당신을 뜻한다. 같은 단어가 행23:26, 행24:3, 행26:25에서 보이는데 공직에 있는 관료중의 한사람일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4절 배운 kathchvqh'(카테케오)는 '들리다, 알리다, 주입하다, 배우다'로 데오빌로는 이미 복음을 받아들였거나 예수에 대한 상당한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태에서 누가는 자세히, 확실하게 안내할 필요성을 느끼고 썼을 것이다.
1:5-25 천사에 세례 요한 탄생 예고
세례요한의 탄생에 관해서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과 같은 배열로 소개하였다. 부모가 소개되고(5-7, 26-27절), 한 천사가 나타났고(8-23, 28-30절), 징조가 주어졌으며(18-20, 34-38절), 자식이 없었던 한 여인을 통해서 잉태하게 된다(24-25절).5절 유대 왕 헤롯 때에 헤롯 안티파스(B.C. 37-4)왕을 말한다.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모든 제사장은 24반열로 나뉘어 있는데 '아비야'는 여덟 번째 반열이다(대상24:10). 그런데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때 네 반열만 귀국했다(스2:26-39). 그리고 다시 옛날 명칭을 따라 24반열로 재분류되어 각 반열은 매년 1주씩 2회를 봉사할 의무가 있다.사가랴는 제사장의 딸인 '엘리사벳'과 결혼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 처?하고만 결혼할 수 있었으나(레21:14)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할 필요는 없었다. 제사장 가문의 아내를 맞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6절에 이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경건한 부부라는 것이 잘 타나난다. 의인 divkaioi(디카이오이)는 '흠 없는, 거룩한'의 뜻으로 올바른 것을 말하거나 행하는 것을 뜻한다. 이스라엘에 있어서는 부정한자들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의로운 자로서의 메시야에 대한 예언에서 이런 표현들이 사용되었다(렘23:5, 렘33:15, 슥9:9, 사53:11). 마태복음 29:19에서는 빌라도의 아내가 예수를 divkaio'(디카이오몽) '결백하다, 도덕적으로 의롭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데 좀더 광범위하게 족장들(마23:35), 구약 성도들(벧후2:7), 선지자들(마13:17)에 사용했으며 순교자들의 무죄한 피(마23:35)에 사용했다.때로는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마10:41)이나 구원을 받을 사람을 말하기도 한다(마25:37). 바울은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살리라(롬1:17)하였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예수 외에 진정한 의인이 없다고 했다(롬3:17).11,12절 누가는 천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지는 않았다. 다만 향단 우편에 있었다고 전한다. 성경에서는 동편을 바?보고 있는 관점에 이야기하므로 이것은 남쪽을 의미하며, 그러므로 천사는 향단과 금 촛대 사이에 서 있었을 것이다.14-17절 아이에게는 삼손과 같이(삿13:4) 포도주나 소주가 금지되었다. 이런 이유로 요한도 나실인(민6:1-8)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나 그런 언급은 없다.천사는 구체적으로 태어날 아이에 대한 인품과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할 것을 이야기 해 준다.① 많은 사람이 기뻐할 것이다.② 주 앞에 큰 자가 된다.③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한다.④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다.⑤ 이스라엘 자손을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한다.⑥ 엘리야로 주 앞에 와서 예비한다.15, 17 앞에 ejnwvpion(에노피온)은 누가의 특이한 표현이다. 이 말은 누가복음(눅1:15, 17, 19, 75, 76, 눅4:7, 눅5:18, 눅13:26, 눅15:10, 18, 21, 눅23:14 등)과 사도행전(행2:25, 행4:10, 19, 행6:6, 행7:46, 행10:31, 33 등)에 35번 나타나지만 다른 복음서에는 단 한번 요한복음 20:30에 나온다.
1:26-38 예수의 탄생 예언
마1:18-25 비교하라여섯째 달에는 엘리사벳이 임신한지 6개월이 된 때를 말한다. 여섯 달 전에도 엘리사에게 나타났었고 또 여섯째 달만에 아기에 대한 예언을 하러온 것이다. 27절 정혼 ☞을 보라. 28절 은혜를 받은라고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인사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의 계획을 결정하시고 천사로 대신해서 소식을 정하고 계신 것이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한 것과 같이 안심시켰다(13절).
은혜 kecaritwmevnh(케카리토메네)는 '은총, 축복'을 말한다. 이 단어는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발견된다. 은혜(cari')는 누가복음 4:22, 사도행전14:3의 특성을 말해주며 사도행전 6:8에서는 성령 충만한 사람을 묘사한다. 사도행전11:23에서는 교회 성장에 있어서 지도적인 역할므 볼 수 있다. 사도행전 14:25, 15:40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한다는 표현이고, 사도행전 15:11에는 권고 형식으로 나타난다. 바울은 이 단어를 값없이 주신다는 십자가의 은혜로(갈2:21) 선포하고 있으며 로마서 3:23-24에서는 이 은혜는 죄인들에게 나타났고 구원의 전부(고후6:1)로 모든 성도들이 받은 것이다(고전1:4). 구원의 방법으로서 율법을 배제하고(롬4:16), 믿음으로 은혜로만 구원을 얻는다(롬3:24). 골로새서 1:6에서는 복음을 뜻하며 에베소서 1:6-7에서는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호의'를 의미한다. 베드로전서 2:19-20은 고난이 은혜로 나타난다. 31-33절 천사가 전해준 예수께 대한 예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①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사7:14 참고)②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③ 저가 큰 자가 되고④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⑤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삼하7:12, 시89:29 참고)⑥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⑦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삼하7:13-16) 34-38절 마리아는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데 놀란 것이 아니고 동정녀를 직역하면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인데 처녀인 자신이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데 놀랐다. 놀란 사실에 대해서 천사는 사가랴의 경우와 달리 꾸짖지 않았다(20절). 마리아는 천사에 말에 의심한 것이 아니라 동정녀인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가지게될 것인가를 궁금해했다. 천사는 성령이 임하여 하신다고 했다.38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주의 계집종 douvlh(둘레) '노예'(눅1:48)로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계획을 수락했다.
1:39-56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계시를 받은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해 세 달 동안(56절) 함께 있다가 요한이 탄생하기 직전에 집으로 돌아온 것으로 보아 마리아는 천사가 방문한 직후에 출발했던 춰이다.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이 동네가 정확히 어디쯤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시골 동네에 살았던 것 같다.41절 이 때에 엘리사벳은 복중의 아이는 뛰어 놀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42절 큰 소리로 kraugh'/(크라우게) '큰 소리, 외침'이었다. 그렇다고 악을 쓰거나 듣기 곤란한 소리보다는 하나의 시 같은 표현으로 아름답게 이야기한 것이다.
43절 주 kurivou(퀴리오스)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복중에 있는 아이가 메시야임을 알았다(시110:1 참고).누가복음은 주(kurivou)라는 명칭을 예수님을 표현할 때 제일 많이(13회) 사용했고 하나님과 예수를 칭한(눅1:6, 9, 11, 38, 45, 66, 76 2:9, 23, 24, 4:18, 10:39 등)것은 26번 나온다. 요한복음 5회, 마가복음에서는 단 한번 이방 여인에 의해 사용된다(막11:3).부활하신 예수께서 주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은(롬10:9, 행2:36, 행5:31, 롬8:34, 고전15:25, 골3:1, 엡1:20-21이 있고 병행구절 히2:6, 마28:18, 시110:1을 참고하라)이다. 골로새서 2:6, 10에서는 주 그리스도는 모든 권위와 능력의 머리시다. 역사적인 예수에 대한 사용으로도 나온다(고전7:10, 12, 딤전4:15, 고전9:5, 히2:3, 행11:16, 행20:35).주라는 단어나 언제나 무게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약에서 사용할 때도 이와 같은 표현이 나타난다(창조주로 행17:24, 추수하는 세상의 주인으로 마9:38, 전능하신 주로 계1:8).누가복음과 요한복음에 나오는 kurivou는 예수의 생애와 업적에 근거한 것이며 부활 사건 후에 결정적으로 예수께서 주님이 되심을 말한다(시110:1을 인용한 막12:35). 그래서 이 단어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셨던 것처럼 신약에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활동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된 것이다(골4:1). 36-56절은 마리아의 찬송(라티어역의 첫 단어를 따서 망니피카트(Magnificat)라고 부른다) 구약의 언어로 된 찬송으로 한나의 찬송(삼상2:1-10)과 매우 비슷한 점이 많다. 56절 집으로 돌아가니라 앞에 원어에는 그녀(aujth'')라는 단어가 있다. [그녀의 집으로 돌아가니라]인데 마리아가 아직 결혼하기 전이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다.
1:57-66 세례 요한의 출생
요한의 탄생은 예언대로 탄생했다. 이 축복의 시간을 어머니와 친족들과 친구들이 함께 나누고 누가복음에 흐르는 긍휼이란 단어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이날의 기쁨을 전해주고 있다.59절 율법에 남자아이는 팔일에 할례 하도록 정해져있다(창17:12, 레12:3). 할례에 이어 아이의 이름을 짖는 문제에 봉착했다. 가족들 모두는 가문에 내려오는 가문의 이름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나이 많은 제사장들의 집안 어른들의 입장에 엘리사벳은 권한이 없다는 것을 알고있었을 것이다. 더 이상 나서기 어려울 때 그의 입은 닫혔고 결국 서판을 통해서 '요한'(!Iwavnnh')이라는 이름을 적어 인정함으로 그 혀가 풀렸다.
1:67-80 사가랴가 요한의 사역을 예언함
68절 찬송하리로다 Eujloghto;'(율?게토스)의 원래의 의미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자'(시41:13, 72:18, 106:48)이다. 신약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누가가 이곳에서 처음 사용했지만 이 단어는 롬1:25, 9:5, 고후1:3, 11:31, 엡1:3, 벧전1:3에도 나타난다.돌아보사 ejpeskevyato(에페스케프사토)는 과거 직설법으로 '도움을 주시기 위해서 살펴보신다'의 뜻으로 누가복음 7:16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 보셨다'로 나타난다. 한군데 더 나오는 곳이 있는데 사도행전 15:14 '권고하신 것을'이다. 이 말은 눅7:16과 같이 번역하는 것이 옳다.사가랴의 예언은 찬송시? 불러졌다. 네 개의 절로 구분할 수 있는데 ① 메시야를 보내주신 것에 대한 찬양의 권고(68-70절) ② 메시야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71-75절)③ 요한의 사역에 대한 묘사(76-77절)④ 메시야의 구원(78-79절)에 대한 감사의 찬양 노래이다.78-79절 돋는 해가...인도하시리라 이 말은 이미 구약의 민24:17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를 연상케 한다. 또한 말4:2의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분으로 찬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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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2? 주석
2:1-7 예수의 탄생
마1:18-25 비교하라 가이사 아구스도(Augustus)는 B.C. 63년에 태어나서 B.C. 27년(31년 설도 있다)에 로마 제국의 통치자가 되어 A.D. 14년까지 치리 했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로마의 중앙정부가 인두세를 받기 위해 인구 등록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이며 이 일은 로마 정부가 14년마다 정규적으로 실시했다. 호적에 대한 증언은 누가는 1-5절 사이에 4번을 사용했다. 이는 당시에 호적이 사실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다(어떤 주석가 들은 호적한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고 하여 부정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처럼 온라인이 잘 되어있는 사회체제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당시의 호적은 고향에서만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고향으로 가게되었다.4-5절 요셉은 나사렛에서 자신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게되었다. 마리아는 아직 결혼하기 전이기 때문에 따라갈 필요가 없었는지 모른다. 남자인 요셉만 등록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이 정해진 사이이고 아마도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던 것 같다.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사관(舍館) kataluvmati(카타뤼마)은 일시적으로 '머무는 곳, 여관'인데 요셉이 너무 늦게 출발하였거나, 베들레헴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빈방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이미 구약에 예언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5:2)를 이루게 된 것이다.7절 구유 favtnh/(파트네)는 '먹다'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만 4번 나온다(눅2:7, 12, 16, 눅13:15).10절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기쁨 cara;n(카라)은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그리고 나중에는 구원의 기쁨(복음)과 연결?어 나타난다(마2:10, 마25:21, 23'즐거움에'로 번역되어있다, 요16:22, 요17:13).
2:8-20 목자들에게 예수의 탄생을 알림
목자들은 당시에 천한 직업으로 분류되었으며 유대인의 규례(規例)에 의해서도 부정한 직업으로 취급되었다. 7절의 '구유'와 '목자들'에 관한 기사는 누가복음에서만 기록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특권층의 모습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서민의 모습으로 가난한자의 모습으로 오셨다.18, 33절 기이히qauvmasan(다우마조)는 '놀라다, 당황하다'의 뜻으로 하나님의 이런 역사에 당연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므 것이다. 이 단어는 '바람과 바다를 순종시킨 일'(마8:27, 눅8:25)에 대해서, '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한 것'(마9:33, 눅11:14)에 대해서, '무화과 나무가 마른일'(마21:20)에 대해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를 말씀하셨을 때'(마22:22)에 사용되었다.
2:21-24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심
21절 할례할 팔일이 되매 예수님은 유대 율법, 창세기 17:12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에 가첼다(참고, 레12:3). 세례 받으셔야 할 이유가 없지만 세례를 받으신 것처럼, 율법에도 복종하셨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기 위해서 율법 아래 나셨다'(갈4:4-5)
2:25-35 시므온의 송가
시므온은 당시의 흔한 이름이었었으며 이곳 위에는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확한 언급이 없다. 그러므로 때로는 나이 많은 장로나, 제사장 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이것에 대한 확실한 어떤 증거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예수님을 알아보았다는 것이다.25절 의롭고 eujlabhv'(유라베스)는 고전 헬라어에서는 '신중하다'는 의미? 종교적으로는 '종교적인 의무에 충실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사도행전 22:12에 '아나니아'도 이러한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아나니아'와 다른 것은 시므온은 의로울 뿐만 아니라 25절 성령이 그 위에 계시였다.29절 이제는 Nu'n(뉜)중요한 의미가 있는 말로 그가 얼마나 주님을 기다려 왔는가 하는 점을 나타낸다. 그리고 구원의 날이 밝았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시므온의 고별 송(Nunc Dimittis '이제는 떠나가게 한다')은 14세기에 걸쳐 교회의 기도문에 사용되었다.주재(主宰)여 devspota(데스포타) '주인, 주권자'라는 뜻으로 56회(벧전2:18) 나타나며 25회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행4:24). 이 단어는 kurivou(퀴리오스)와 함께 한글성경에서는 '주'로 나타난다(눅1:43 주석을 보라).
2:36-38 안나의 감사
시므온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은 누가는 안나에 대해서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이라고 히브리인의 식으로 정확하게 그의 신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셀 지파는 사라진 열 지파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그래도 명맥을 유지해온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이스라엘은 선지자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일곱 명의 여 선지자만을 인정한다(탈무드, Megillah 14 상반절) 그런데도 누가는 이 여인을 선지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그의 신앙과 당시의 사람들의 인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하지만 개인적인 삶은 결혼하고 7년을 남편과 살고 남편이 죽은 뒤 84년을 혼자 살았다.37절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예수님을 알아보고 감사하고 사람들에게 예수에 대한 증거를 했다.
2:39-52 예수의 어린 시절
41절 그 부모가 해마다...예루살렘으로 가더? 예수님의 부모님들은 예수를 유대인이 지켜야할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율법을 잘 지키고 있었음을 말한다. 유대의 성인 남자들은 삼대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에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절기를 지키도록 되어있었다(신16:16).42절 열 두 살 유대인의 남자아이들의 율례를 살펴보면 태어나 8일째 할례를 받고(창17:12), 세 살 때 술을 단 옷을 입고(민15:38-41, 신22:12), 다섯 살 때 두루마리에 기록한 율법(쉐마:Shema, 할렐:Hallel)을 어머니로부터 배운다(신6:1-3). 그리고 10살이 되면 미쉬나(탈무드)를 공부하고, 13세가 되면 소위 '언약의 아들'이 되는데 이 때부터 유대인으로서 공회(Synagogue)회원이 될 수 있으며, 성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언약의 아들이 되기 전에 미리 참여함으로써 교육시키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에서 함께 방문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미쉬나에는 1,2년 전에 미리 성전을 가봐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Yoma 8:4).46절 사흘 후에 부모들이 예수님을 처음 잊어버렸을 때를 말한다. 이 때 까지 이들은 예수를 찾아 헤매었다. 45절 찾으면서 ajnazhtou'nte'(아나제툰테스) 현재 분사형으로 예수님의 부모가 계속 예루살렘을 돌며 찾고있었음을 말한다.48절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너를 찾았노라고 심정을 예수께 이야기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답하셨다. 부모들은 걱정했지만 예수는 편안하게 있었고 오히려 선생들과 토론하고 있었다.51절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이 부분이 요셉에 관한 누가의 마지막 기록이다. 마리아는 이후에도 언급되지만 요셉에 대한 그 어떤 기록도 찾을 수 없다.52절 예수께서는 신체적으로도 성장을 계속하셨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삼상2:26, 잠3:4 참고) 참고 : 동일한 부분인, 6개월 먼저 태어나 함께 성장 해 가는 세례요한은 눅1:8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말에 대한 표현은 없다.
누가 3장 주석
3:1-20 세례요한의 회개 선포
마3:1-12, 막1:2-8 비교하라누가는 요한이 사역을 시작 때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으로 요한의 사역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사역하신 시기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구스도가 A.D. 14년 8월 19일에 죽었고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는 A.D. 28년 8월부터 A.D. 29년 8월까지를 가리킨다. 유대는 헤롯 대왕에 의해? 아켈라오에 분할된 통지구역이었다. 그러나 그가 악정을 하여 유대 주민들이 로마정부에 그를 제거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래서 그는 A.D. 6년에 그들이 원하는 통치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A.D. 26-36년 사이에 직책을 맡았다. 헤롯은 헤롯 대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를 말한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B.C. 4년에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왕이 되었으며 A.D. 39년까지 통치했다. 이 헤롯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고, 사역하시는 기간동안에 유대를 지배한 왕이었다.분봉왕이란 말은 본래 로마제국의 영토 4분의 1을 다스리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말은 작은 지역이나 영주에게까지 사용되었다.누가는 1절에 이어서 2절에도 유대인에게 중요한 시대적 구분을 첨가한다. 즉 대 제사장에 관한 부분이었다. 안나스는 A.D. 6년부터 로마 총독 그라투스가 그를 해임했던 A.D. 15년까지 대제사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아들들이 이어서 대제사장이 되었는데 A.D. 18-36년 사이에 맡았던 '가야바'는 그의 사위였다. 그러나 누가는 대제사장이란 말을 단수로 사용했다. 이것은 진정한 대제사장은 하나 뿐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대제사장의 직분이 넘어갔지만 실제적인 영향력은 계속해서 안나스가 행사하고 있음을 말한다. 예수께서 잡히셨을 때에 먼저 안나스에게 데리고 갔던 사실(요18:13)은 이러한 것을 입증하고 있다.말씀 rJh'ma(레마)은 '실제로 말하여진 말씀(the actual words spoken)'을 의미한다(마4:4, 마12:36, 마18:16, 막9:32, 막14:72, 눅5:5, 눅24:8, 요3:34, 요6:63, 요15:7, 행2:14, 행5:32). 세례요한이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한다. 4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4복음서 모두가 세례요한에게 이사야 40:3을 적용하고 있는데 누가는 여기에 직접 그 부분을 기록해 넣음으로 확실하게 예수의 앞에서 '길을 평탄케'하는 역할을 하고있음을 분명히 한다.요한은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7절 독사의 자식들아, 9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라고 외침으로 회개를 촉구하고 나섰다.이러한 요한의 가르침은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가로막혔지만(눅7:30) 그의 강력한 설교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질문을 이끌어 냄으로 오랜 세월 정체된 유대인의 심성에 파고들었다. 11절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라고 말함으로 실천으로 하나님 섬김을 나타내라? 설명한다. 옷 citw'na'(키토네스)은 '속옷'을 말하며 겉옷은 iJmavtiav(히마티온)이라고 하는데 따뜻하게 하려고 한 벌의 속옷을 더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막6:9) 속옷을 한 벌 더 입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는 말이다.12-13절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세리들이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이다. 이들은 로마로부터 세금징수를 하청 맡은 사람들로 부과한 금액 이상의 세금을 징수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원망을 받았다. 로마의 하수인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도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는데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함으로 이들에 ?한 일반인들의 감정은 극에 달했다. 그럴수록 이들은 더 많은 세금을 짜내기에 바빴다. 요한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고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고 한 것이다. 14절 군병들은 로마군인인지 유대군인인지 모른다.하지만 세금 징수 원들과 함께 따라다니던 유대군인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들에게는 받는 금료에 대해서 족한 줄을 알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직업을 버리라고는 말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충실하라는 권면을 함으로 모든 사람들은 혹시 이 사람이 '그리스도'신가 생각하게 되었다.16-17절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다. 곧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나섰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푼 것은 메시야가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기 전까지 예비적인 특성을 가진다(눅3:1-20 참고). '성령과 불'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원어의 전치사 ejn(엔)은 '...안에, ...로서, 혹은'의 뜻으로 동시에 받고있는 것이다. 성령과 불은 정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심판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함께 사용한 이 말에는 성령은 정결케 하는 의미가 불은 심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사40:3, 겔36:25-27, 욜2:28). 17절 손에 냅를 들고 ... 불에 태우시리라는 말씀은 매우 강력한 심판을 경고하고 있다. 추수와 타작에 대한 비유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난다(시1:4, 잠26장, 사41:15, 렘15:7, 계14:14-20). 꺼지지 않는 불은 영원한 심판을 의한다(욥20:26, 사34:9, 사66:24, 마5:22, 마13:42).
3:21-22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심
마3:13-17, 막1:8-15, 요1:32-34 비교하라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공적인 단 한번의 만남이다. 이 만남은 네 개의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었다. 누가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라고 기록함으로 요?이 세례를 주기 때문에 하늘이 열린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열린 것이다. 예수께서는 기도의 삶을 사시는데(눅6:12, 눅9:18, 눅29:41) 이 부분은 공적으로 누가복음에서 처음 나타나는 예수님의 기도이다. 바로 이 때 하늘이 열린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는 현현의 임재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현현(顯現)하신다(출24:10, 출11:33, 신5:4).22절 비둘기의 형체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고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 이제는 세례요한의 증거만이 아니라 직접적인 하나님의 나타나심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하셨다.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을 이루고있는 것이다(사42:1).사랑하는 ajgaphtov'(아가페토스)는 '아들'이나 '딸'을 붙여서 사용할 때는 외아들 외동딸이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외아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마3:17, 마12:18, 마17:5, 막9:7, 엡6:21, 골4:7, 14, 벧후1:17, 벧후3:15).
3:23-38 예수의 족보
마1:1-16 비교하라마태는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이르는 하향식 족보를 기록했다. 반면 누가는 이방인들을 향해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부터 상향식으로 아담과 하나님께 이르는 족보를 기록했다. 마태는 각 세대사이를 '낳고(begat)'라는 말로 연결시켰고 누가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식의 '의' 소유격을 사용하여 각 세대를 연결시켰다.마태는 다윗과 스룹바벨 사이에 열 다섯 사람의 이름을 넣은 반면 누가는 스물 한 사람의 이름을 넣었다. 다윗과 요셉사이에는 마태는 아홉 세대를 넣었으나 누가는 열 일곱 세대를 넣었다. 그리 이곳쟀 이름들은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차이는 서로 다른 세대로 이었기 때문이다. 흔히 다른 쪽의 세대로 잇다보면 얼마든지 그 수가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태는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호적을 위한 임의적인 숫자 구분방법을 택하여 기록했다. 이것은 전체 세대를 다 포함하지 않고 전체 세대들 가운데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생략하는 것이 이 방법의 특색이다(스7:1-5, 대상6:3-15 비교하라). 또한 마태는 솔로몬에게서 내려오는 왕가의 법적 계보를 말하고 누가는 평민의 형통을 말하고 있다. 마태는 왕가의 족보요 누가는 평민의 ?통을 잇고 있다. 족보로 보아 성경의 저작들은 유대인에게는 왕으로 오신 예수를 소개하고 싶었고 이방인에게는 보통 사람과 같은 신분으로 오신, 아니 오히려 종으로 섬기는 예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누가 4장 주석
눅4:1-13 예수께서 시험받음
마4:1-11, 막1:12-13 비교하라성령의 충만함라고 누가는 전하는 반면 마태는 '성령에게 이끌리어'(마4:1)라고 하고, 마가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막1:12)고 기록하고 있다. 의미는 다르지만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 누가의 기록대로 '성령이 충만하셨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광야로 가신 것은 처음부터 마귀에게 시험받으시기 위함이 아니요 스스로 기도하시기 위해서 가신 것이다. 사십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것이다. 바로 이 기도가 끝나는 시점에서 마귀는 예수께 다가온 것이다. 마가는 이 광야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전하고 있다(막1:13). 첫 번째 시험(4:3-4)첫 번째 시험은 인간의 육체를 입으신, 우리와 같은 예수께 금식 기도 후 먹어야 살 수 있는 양식의 원초적인 문제를 들고 나왔다. 마귀가 ...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한다. 사단은 첫 번째로 발견한 약점을 파고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은 마귀의 조롱이다. 마귀는 사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와 귀신들은 언제나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아들이여!' Eij uiJo;' ei\ tou' qeou'(에이 휘오스 에이 투-데우-)라고 외쳤다(마8:29, 눅4:41). 다시 표현하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임이 사실이라면]은 가정법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을 전재한 조건이다.예수님은 마귀의 이 시험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4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대답은 시험의 내용에 대해서만 말씀하셨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에 대한 신분의 문제를 대답지는 않으신다. 이미 이것은 사단도 알고 있는 사항이기 때문에 대답할 필요성이 없었던 것이다. 떡으로만이라고 대답하심으로 떡의 필요성을 부인하지는 않으셨다. 마태복음 6:33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두 번째 시험(4:5-8)마태와 누가의 기록이 다르게 나타나는데 마태의 셋째 시험이 누가의 둘째 시험으로 나와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저자의 주관적인 ?장에 따라 순서가 기록된 것이라고 보면 너무 순서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 복음서의 입장에서만 보고 그 순서를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일반적으로 주석가들은 누가는 장소에 따라 순서를 배열했다고 보고 있다. 즉 ① 광야 ② 산 ③ 성전두 번 째로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여러 주석가들은 이 표현은 물리적이 아니라 환상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순식간에'와 '천하 만국'이라는 부분에서 이스라엘의 산에서 천하를 볼 수 없으며 순식간에 마귀가 예수를 다른 곳으로 데리고 다니는 모습은 예수께서 질질 끌려 다니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견해다. 칼빈은 예수께서 질질 끌려 다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끌려다닌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시험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우주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요 아들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사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출9:29, 신10:14, 욥41:11, 시24:1, 시50:12, 시89:11, 고전10:26). 사단이 자신의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속임수요 거짓인 것이다.8절 예수께서 ...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였다. 7절 절하면 proskunhvsh/'(프로스퀘네세스)은 8절 예수님의 대답인 경배하면과 같은 단어로 두 곳 다 동사형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이것은 종교적 예배행위를 뜻하는 것이지 윤리적인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4:9에는 '경배하면'으로 바르게 되어있다. 세 번째 시험(4:9-13)누가의 순서대로 본다면 첫 번째는 인간의 본능적인, 먹는 문제이고 둘째는 예수의 사명에 대한 문제라면 셋째 시험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고 예수께 먼저 시험을 하지만 사실은 10절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고 하여 감히 그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는 성경을 잘 아는 것처럼 엉뚱하게도 시편91:11-12절(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예수께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시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대답하셨다. 그런데 ?제는 마귀가 성경을 먼저 인용하여 시험하고 있다. 사단의 간교함을 드러내고 있다. 사단은 엉뚱하게도 말씀을 엉터리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적용하는 사람들과 같이 이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시편이 이 노래 시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가 사명을 받아 그 일을 할 때 적용되는 것이다. 마귀의 이러한 부당한 시험에 예수께서는 신명기 6:16을 인용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정당한 대답으로 물리치셨다.
눅4:14-15 사역의 시작
마4:12-17, 막1:14-15 비교하라예수께서 처음으로 갈릴리 사역에 관한 소개이다. 그런데 ?미 예수의 소문은 퍼져있었다. 이것은 유대에서의 초기 사역을 수행하셨기 때문일 것이다(요2:13-4:3, 마4:12-17). 예수의 1차 갈릴리 사역은 ① 나사렛에서의 사역(눅4:14-30), ② 가버나움에서의 사역(눅4:31-44), ③ 최초의 제자들을 부르심(눅5:12-26), ④ 문둥병자와 중풍병자를 고치심(눅5:12-26), ⑤ 마태를 부르심(눅5:27-39), ⑥ 안식일 논쟁(눅6:1-11), ⑦ 열 두 사도를 세우심(눅6:12-16) 등으로 이루어 졌는데 여기서 나사렛 사역은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15절 회당 sunagwgai''(쉬나고이스)이 복수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 ?릴리에서 여러 회당을 다니시며 설교한 것을 의미한다.이 회당의 기원은 분명치 않은데 성전으로부터 멀어지는 지역들을 위주로 포로기 시대 혹은 에스라의 통치시대에 설립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외부에 있는 자료 중에 B.C. 247-221년에 기록된 이집트의 문헌이다. 한편 요세푸스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시대에 안디옥에 있었던 회당에 관해서 언급하는데, 팔레스타인의 가장 오래된 비문에서 발견된 델로스에 있는 회당의 유적 연대는 B.C. 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당은 유대인들이 많은 지역을 따라 확산되어 로마 제국?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합해서 약 150개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믿을 만 하지는 않지만 어떤 학자는 예루살렘 안에만 480여 개가 있었다고 한다.회당의 건축 방식에는 규정이 없었으나 대부분의 회당들은 그 입구를 예루살렘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것은 기도를 예루살렘을 향해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인 들이 자신들의 성지인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를 향해서 기도하는 것은 이것을 본 딴 것이다.회당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율법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행13:43 집회)과 기도하는 장소였다. 예루살렘성전이 없어진 이후에슴 성전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이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셨으며 병자들도 고쳐주셨다(막1:21, 눅4:15, 마9:35). 자기 과신으로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회당 사용을 비난 하셨다(막6:5, 막12:39).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에 관해서 회당 자체가 비난의 대상으로 언급되었다(마10:17, 마23:24, 막13:9, 눅12:11, 눅21:12). 제자들에게는 마23:34 회당에서 징벌 받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눅4:16-30 회당에서의 증거와 고향에서의 거절 당하심
마13:53-58, 막6:1-6 비교하라읽으려고 ajnagnw'nai(?나그노나이)는 '권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소리 높여 읽다'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17절 이사야의 성경책을 드렸는데 예수께서는 의도적으로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를 읽으셨다.드리거늘 ejpedovqh(에피디도미)란 말은 예수께서 이사야의 61장의 책을 요구하시고 건네 주었다고 볼 수 있다.18-19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21절에서는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여 확실히 이 말씀이 예수 자신께 주신 말씀임을 설교하셨다.은혜의 해는 레위기 25:8-55의 '희년'(year of jubilee)을 말한다. 50년마다 빚진 자들의 빚이 탕감되고 노예들이 해방되고 땅의 경작을 쉬게 하는 해방의 해를 말한다.22절 사람들이 은혜로운 말씀을 기이히 여기기는 했으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말함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요셉의 아들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마귀가 예수를 시험할 때 ?의 절들(눅4:1-13)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요셉의 아들로만 보는 것이다.예수께서는 23절 고향에서도 똑같은 사역을 하셨지만 이들의 배척에 24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다.27절 나아만(Naima;n)은 유대인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택했다는 선민의식이 강하여 이방인을 인정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가 폭발했다.25-27절에서 모든 사람을 위해서 예수께서 오신 것이 아니라 특정한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고 증거 하실 때 사람들은 회당에 있던 이 사람들은 28-29절 다 분이 가득하여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한 끔찍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눅4:31-37 귀신을 쫓아냄
막1:21-28 비교하라예수께서는 자신을 배척한 나사렛을 떠나 가버나움으로 가셨다. 이곳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고향이기도 하다(38절).32절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ejxeplhvssonto(에케프레손토)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충격을 받았다'이다. 이 사람들 중에는 33절 귀신 들린 '들린' e[cwn(에코)는 '소유하다, 가지다, 붙잡다'의 뜻으로 '전혀 다른 인격이 육체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는 상태'를 말한다.34절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라고 했다. 이곳에 오기전에 나사렛에서 사역하시고 자라나신 예수는 '나사렛 예수'라고 불려지기도 했다. 이 귀신은 22절 '요셉의 아들'이라고 말한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거룩한자'로 예수를 알아보았다.35절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말씀 한마디로 그 귀신은 이 사람에게서 나왔다.
눅4:38-41 베드로 ?모의 열병 고침
마8:14-15, 막1:29-31 비교하라38절 공관복음서 기자 셋이 모두 '열병'이라고 기록하는데 누가는 '중한' megavlw/(메갈오)이라고 밝혔다. 누가는 의사 입장에서 이 열병은 아주 심한 상태로 말하고 있다. 40-41절 해 질 적에 각각의 병자들이 예수께 나왔고 안식일에는 옮길 수 없는 병자들을 해가 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옮겼다. 당시의 유대인의 시간은 해가 지면 다음날이 되는 것이다. 안식일이 마치고 다음날이 된 것을 말한다.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개인적인 접촉을 통해서 병을 고치셨다. 그리고 누가만이 귀신들이 쫓겨갈 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고 소리를 지르고 나간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예수께 대한 마귀들의 시험은 눅4:1-13에서 마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것은 아니지만 병자들을 통해서 계속되고 있음을 말한다.
눅4:42-44 여러 회당에 복음전파
막1:35-39 비교하라43절 복음을 전하여야 ...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고 말하심으로 오신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예수님이 보내심을 받은 것은 눅9:48, 눅10:16을 참고하라
누가 5장 주석
5:1-11 첫 번째 부르신 제자들
마4:18-22, 막1:16-20 비교하라여기서 부른 제자들과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누가는 예수께서 이미 시몬과 안드레를 접촉했을 사건인 시몬의 장모를 고쳐준 일을 먼저 기록했다. 이로 보아 예수께서는 이미 이들과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2절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구약을 따라 바다라고 부르는 반면 누가는 항상 호수라고 불렀다. 이곳은 대략 넓이 13마일, 길이 7마일의 면적이며 바다보다 700피트나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일반적으로 '갈릴리'라고 불렀는데 이곳에서만 '게네사렛'이라고 불렀다(구약에서는 '긴네렛 바다'(민34:11, 수13:27), 요한복음에서는 두 번 '디베라'(요21:1)로 불렀다).예수님은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시기 위해서 두 배를 사용하시고자 했다. 그런데 이 배의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이로 보아 이 두 척의 배는 방금 고기잡이를 하고 돌아왔지만 고기가 없는 빈배임이 틀림없다. 고기를 잡지 못하고 돌아온 배인 것이다. 고기를 잡지 못한 상황에서도 예수의 말씀을 순순히 응한 것으로 보아 예수의 말씀을 거절 할 수 없었던 어떤 연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시몬의 장모를 고쳐준 일을 기억했을 것이다.가르?시기를 마친 후,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제안하셨다. 대답에서 베드로가 5절 선생이여 !Epistavta(에피스타타) 누가는 히브리어에서 온 '랍비'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누가복음에서 6번(눅5:5, 눅8:24, 눅8:45, 눅9:33, 눅9:49, 눅17:13)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것은 누가가 이방인을 염두 해 두고 사용한 용어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용어가 '랍비'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식과 권위에 있어서 더 의미가 있다.4-5절 목수의 아들인 예수가 바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을 것인데, 그리고 그들은 이미 밤므 세워 고기를 잡았지만 잡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예수의 병고침의 능력을 본 이들은 크게 기대는 안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던져보겠다고 하였다.6-7절 말씀의 결과는 주효했으며 다른 배를 동원하여 나누어 실어야 할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8절 시몬 베드로 Sivmwn Pevtro'는 지금까지는 베드로의 이름이 '시몬'으로만 나왔다. 시몬과 베드로라는 이름이 함께 사용된 경우는 본서인 누가복음과 함께 기록한 사도행전에만 나타난다. 여기서 누가가 '시몬'에 의도적으로 '베드로'를 추가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중대한 전환점을 의미하는 것이다.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신이 죄인임을 예수께 고백했다. 5절까지는 예수님을 '선생이여'라고 불러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주여라고 부르고 있다(눅1:43 주를 참고하라).9절 놀라고 qavmbo'(담보스)는 매우 두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말한다. 우리말에 말문이 막히다와 유사한 표현이다. 11절 많은 물고기가 잡혔는데 이들은 물고기에는 관심이 없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방금 잡은 고기도 배와 함께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
5:12-25 문둥병자를 고침
마8:2-4, 막1:40-45 비교하라구약에서의 문둥병은 오늘날 정확한 의학 용어로 한쎈씨병(Hansen's Disease)으로 이 병에만 국한하지 않고 넓은 의미의 모든 피부병(레13:1-59)을 포괄하는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문둥병은 옮겨지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접근을 막았다. 만일 문둥병이 깨끗해지면 제사장에게 검사를 받고 확인되었을 때 감사예물을 드리고 사회로 복귀되었다(레14:1-32).13절 손을 내밀어 특별히 사람들과 철저하게 격리되어 생활하는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부정한 사람을 만지면 그 사람도 부정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16절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는 NIV에서는 문장속에 종종(often)이라는 단어를 넣어 이러한 행동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원어에서 uJpocwrw'n(엔 휘포코론)는 '스스로 물러나다'로 미완료 과거형이며, 귀찮아서 물러가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해서 잠시 물러가셨다가 말씀과 병 고치는 일을 계속하신 것을 알 수 있다.
5:17-26 중풍병자를 고침
17절 교법사 nomodidavskaloi(노모디다스칼로이)는 '율법의 해석가, 율법교사'를 말하며 '서기관'이나 '학자', '랍비'와 거의 같은 뜻이다. 같은 단어가 디모데전서 1:7에는 '율법의 선생'이라고 나온다.21절 참람한 blasfhmiva'(블라스페미아)는 하나님의 권능과 위엄에 대한 도전이다. 하나님에 대한 모독으로(계13:6) 예수께서 죄를 사하실 때(막2:7), 메시야 임을 주장하실 때(막14:64), 하나님과 동등하고 주장하실 때(요10:30)에 신성모독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 역시 이 죄목으로 고소당하신 것이다(막14:64).
24절 인자 oJ uiJo;' ajnqrwvpou(호 휘오스 안드로푸)는 누가복음의 핵심사상으로 34회 사용되었다. 이 말은 요12:34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 자신을 사용하여 사용하였다(마5:19, 마8:20, 마17:22, 마25:31, 막2:10, 막8:24, 막14:41, 눅5:10, 눅11:24, 눅18:8, 요1:51, 요6:10, 요18:17 등). 원문상의 의미로는 人子(사람의 아들)아들을 의미하지만 이 말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관계된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3:13)에 잘 나타난다. 이 말은 문자 적으로는 '인자'이지만 의미상으로는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본 '인자'가 ?차 올 메시야였던 것이다(단7:13). 인자로 오신 목적은 그래야만 그의 수난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눅4:29 눅11:53, 눅20:20, 눅22:63-65, 눅23:11).
5:27-32 세리 레위를 부르심
27절 좇으라 !Akolouvqei(아콜루-데이)는 연결하는 접두사 '길'에서 유래한 말로 '좇다, 따르다'의 뜻이 있다. 같은 단어는 마8:22, 마9:9, 마10:38, 마16:24, 마19:21, 막2:14, 막8:34, 막10:21, 눅9:23, 눅18:22, 요1:43, 요10:4, 요12:26, 요21:19, 요21:22, 행12:8, 계14:13에 나타난다.28절 모든 것을 pavnta(판타) '전체를 내버려두고'의 뜻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를 의미한다. 전체를 버리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막10:17-22, 눅9:57-62), 전체를 버리는 사람에 대해서(마4:19-22, 막10:28-30, 눅5:28), 전체를 버린 사람에 대해서(요17:4-5, 빌2:4-11) 약속을 주신다.29절 레위는 자기 집에서 th'/ oijkiva/(테-오이키아)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께 기꺼이 필요에 따라 자신의 집을 사용하도록 했다. 마태의 집은 눅5:27-29에서, 베드로의 집은 마8:14-15에서, 소경의 집은 막8:22-26에서 부자인 바리새인의 집은 눅8:22-26에서, 그 밖의 집 막2:1-4, 14-15, 막7:24, 막9:28에서, 제자들의 집은 눅10:38-42에서 사용되었다.사도시대의 제자들의 집(행2:46, 행5:42, 행9:43, 행12:12-13), 유스도의 집(행18:7), 시몬의 집(행9:43, 행10:6-7), 부리스길라, 아굴라의 집(행18:1-3, 7), 알려지지 않은 사도들의 집(행21:7-11), 빌립보의 집(행21:8-9), 빌레몬의 집(몬1:22)이 있는데 이 집들에서부터 초대교회가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5:33-39 금식에 대한 교훈
금식 nhsteuvousin예수님 당시의 금식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일반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대민족의 원래 금식 일은 속죄일(7월 10일)인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레16:29). 이는 히브리어로 !k,ytevop]n'Ata, WN['T](아나 네페쉬) '영혼을 귀롭게 하다'는 뜻이 있다. 유대인의 금식은 국가적 재난(삿20:26)이나, 병들었을 때(시35:13), 애곡할 때(삼상31:13), 회개할 때(왕상21:27), 위험이 임박할 때(대하20:3)에 했다. 그런데 바벨론 포로 당시에는 자신들이 제사를 드릴 수 없었기 때문에 회개의 뜻으로 그리고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의미로 금식을 했다. 이 금식은 예루살렘 파멸과 관련해서 이루어졌는데 ① 성전이 불탄 날(5월 7일 / 왕하25:8-9)② 그달리야 피살일(7월 2일 / 왕하25:23-25)③ 성전 포위 개시일(10월 10일 / 왕하25:1)④ 성전 함락일(4월 9일 / 왕하25:3-4) 등이 있었다.이 외에도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눅18:12), 즉 모세가 율법을 받으러간 목요일 날과 그것을 가지고 내려온 날 월요일을 기념하여 금식 일로 지켰고 개인의 신앙에 따라 경건함을 보이려고 더 많은 금식을 했다(참고: 외경 유딧서 8:6). 예수님은 이들의 신앙을 과시하기 위한 형식적인 금식기도를 외식된 행위로 질타하셨다(마6:16, 마9:14). 금식할 때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 하라고 하신다(마6:18). 또한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막 2:20, 눅5:35)
누가 6장 주석
6:1-5 안식일의 주인
마12:1-8, 막2:23-28 비교하라 안식일에 ejn sabbavtw/(엔 사빠토) 제자들이 ... 비비어 먹으니 '마태는 제자들이 시장하여'(마12:1)란 말을 첨가하여 그들의 배고픔 때문에 행해진 일이라는 것을 말했다. 제자들의 행동은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에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가하니라'고 하였기 때문에 잘못을 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이 제기하는 것은 안식일에 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비비어'를 아래 4,5,7항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것으로 보고있는 것이다.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39가지 안식일 금법에 관계된 다음 조항들이 있다.1. 씨뿌리지 말 것2. 밭 갈지 말 것3. 곡식 단을 묶지 말 것4. 곡식을 거두지 말 것5. 곡식을 타작하지 말 것6. 곡식을 까불지 말 것7.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지 말 것8. 곡식을 찌지 말 것9. 채질하지 말 것10. 반죽하지 말 것11. 굽지 말 것12. 털 깍지 말 것13. 빨래하지 말 것14. 때리지 말 것15. 염색하지 말 것16. 실 짜지 말 것17. 밧줄 끌지 말 것18. 두 끈 만들지 말 것19. 두실 을 짜지 말 것20. 두실 을 가르지 말 것21. 매듭을 짖지 말 것22. 매듭(끈)을 풀지 말 것23. 바늘로 두 번 깁지 말 것24. 두 뜸을 깁기 위해 찢지 말 것25. 사슴을 잡지 말 것26. 죽이지 말 것27. 껍질을 베끼지 말 것28. 소금 치지 말 것29. 그 가죽을 만들지 말 것30. 머리털을 밀지 말 것31. 그 것을 깍지 말 것32. 두 글자를 쓰지 말 것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지 말 것34. 집 짓지 말 것35. 헐지 말 것36. 망치로 납작하게 때리지 말 것37. 불을 끄지 말 것38. 불을 켜지 말 것39.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께 물어왔을 때, 예수께서 다윗이 시장할 때에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할 진설병을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먹었지만 정죄를 받지 않았었다는 다윗의 예를 통하여 한 원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것은 안식일의 율법도 다른 요소들로 말미암아 제쳐질 수 있다는 내용이다.마 12:5에는 마가도 누가도 언급하고 있지 않는 내용이 거론되어 있다. 그것은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안식일의 법을 깨뜨렸다. 왜냐하면, 그 날 그들이 예배 의식을 집행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겐 안식일이 평일보다 더욱 바쁘고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안식일의 규례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안식일마다 법을 범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오경에는 그들은 죄를 지었다고 언급함이 없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원리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율법들은 다른 율법이나 원리가 덜 중요한 율법보다 우선권을 차지함을 볼 수 있다.또 한 가지 사실은, 마가와 누가는 안식일에 대한 논쟁의 본문을 언급하기 전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는 내용이 언급되어진 후에 본문들이 전개된다. 여기서 우리에게 주는 요점은 예수께서 새 일을 만들고 있다는 진리를 제시해 주고 있다.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즉 그것은 예수께서 완전하고 새로운 종교적인 형태와 그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것으로 가져왔다고 가르치고 있다. 안식일 그 자체가 메시야 시대의 도래와 회복의 주제와 연관이 있고, 또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사실에는 안식일의 개념이 본질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한다는 깊? 의미가 여기에 포함이 되어 있다.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막 2:27-28).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거룩하고 복되게 하여 인간에게 주시고 하나님과 인간이 영교하게 하신 것은 인간을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안식일의 종이 되거나, 또는 그 날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오시고, 인간은 하나님께 나가서 영적으로 교제하고, 거룩함을 누리고, 축복을 받게 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을 지키면 거룩하여 지고, 또 안식일을 지킴으로 복을 받게 되는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수단과 방편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내용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이다. 먼저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 그 죄악을 청산하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죄인들로 죄악을 사유함을 받고, 진노와 형벌에서 면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면 안식일이 죄 문제를 해결하며, 하나님께서 안식일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하였는가? 그것 또한 아니다. 단지 안식?은 영적인 사건의 그림자이다. 그 안식일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 실체는 인격적 존재이다. 즉, 인자이다. 그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이 인자는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자로 신성으로는 하나님 편에, 인성으로는 인간 편에 서서 양편을 중재하신 중재자시다. 그 중재자는 누구 신가? 마가복음 2장 28절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한 날이다. 성경에 근거하면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즉, 초림에 관한 예언이다.그러므로 할라카에 의하면 분명히 제자들의 안식일쟀 행위는 랍비들의 규례를 파괴했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모세오경의 규례를 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위의 공관복음의 본문들은 안식일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을 강조하고 있다. 안식일의 기원은 출34:21, 출23:12, 신5:12이하, 레23:1이하, 레19:3, 26:2에서 나온다. 바벨론에서도 유사한 것들이 있지만 이것들은 달의 주기와 관련이 있으며 속죄일의 의미를 갖고 있다. 포로기 이전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짐승과 모든 생명체에게 절대적인 휴식을 명한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제를 거행하고 사람에게 자문을 구했다(왕하4:23). 포로기 이후시대에는 이방인을 구별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으로 이용되었다(겔20:12). 이러한 안식일을 모독하는 자는 재앙이 내리리라는 저주를 받았다(겔20:13). 이 시기에 안식에 관한 다양한 휴식 명령들이 출애굽기 35:3, 16:22, 레위기 24:8의 규칙들이 강화되어 만들어졌다(겔45:17, 느13:15).랍비의 저작들은 금지항목을 더 만들어 모두 41가지의 항목을 만들어 확대시켜서 각 항목마다 6개씩의 보조적인 내용을 분류했다. 안식일 법에 저촉되지 않는 보다 우선 되는 것들도 있는? '제사장이 번제물를 준비하는 일,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잇는 사람들, 자기 방어, 병중에 사람을 돕는 것, 출산, 할례, 장례'는 안식일보다 우선하였다.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날까지 모든 음식의 준비와 많은 거리를 걷지 않기 위해서 미리 도착하고 거의 모든 일을 쉬어야 했다. 예수님 시대 때(신약)의 안식일 역시 유대 문헌에서 밝혀진 바와 일치한다. 예수의 시체는 안식일 전에 매장되었으며(막15:42), 밀 이삭을 뽑는 것이 금지되었고(막2:23-24), 죽음의 위험에 있지 않은 사람은 도움을 받거나 병 고침을 받아서 안되며(막3:1), 여행이 제한되고(행1:12), 물건을 운반할 수 없었다(요5:9-10).현재의 예수그리스도의 교회가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어떤 의무나 예수의 명령이 없다. 이 날에 집착해야할 아무 이유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유대인식의 안식일의 계명을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를 오히려 욕되게 하는 것이다. 현재 예수그리스도의 교회들이 지키는 주일(부활일)은 예수님이 주인 되시는 날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안식일이 부활일 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6:6-16 손 마른 자를 고침
마12: 9-14, 막 3:1-6 비교하라안식일에 다시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이 송사하기 위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를 엿보고 있었다. 눅6:7에 의하면 이 엿보는 사람들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 간주하고 있다. 세 복음서들의 저자들 모두가 엿보는 사람들의 의도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여기서 엿보는 무리들이 이해하고 있는 안식일의 개념과 예수님의 생각과 대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잘못된 인식을 고치고, 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엿보고 있는 무리들 앞에서 병므 고치셨다.여기서 분명히 예수님은 그들의 할라카를 공격하고 있다. 사실 모세오경에도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랍비들이 출31:14에 근거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는 일은 일을 하는 것으로 해당된다고 해석했고, 그리고 나서 그들이 수정하길 안식일에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제외된다고 규례를 정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직업적인 의사도 아니요, 어떤 약도 사용하지 않았고, 그리고 어떤 특별한 행위도 그 환자를 고치기 위해 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으로 고치셨다. 그러므로 랍비들이 제정한 규례들에 의하여도 예수님의 행위는 안식일에 병을 고쳐서 할라카를 범했다고 결론을 내리기에 간단한 것이 아니다.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행한 자기의 행위를 변호한 방식은 그가 안식일을 폐지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종종 그 반대를 의미한다. 기존의 랍비들의 교훈으로부터 나온 백성들의 관습에 대해 구약 성경을 거론한다는 것은 안식일에는 안식이 필요하다는 권위를 인정하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6:17-26 복 있는 자와 저주받은 자
17-49절 마5-7장에 기록된 산상수훈보다 짧지만, 누가는 함축하여 전하는 춰 같다. 마태는 예수께서 산 위에 계시다고 기록했는데(마5:1), 누가는 17절 예수께서 평지에 계셨다고 했다. 설교가 이루어진 이곳은 먼저 예수께서 기도하시기 위해서 12절 가버나움 근처의 언덕으로 올라가셨고 12제자를 부르셨다. 그리고 질병과 말씀하시기 위해서 평지로 내려가셨다(17-19절). 그 이후에 군중들을 떠나 제자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더 높이 올라 가셨다(마5:1). 무리들은 산에 올라와서 설교를 들었는데(마7:28, 눅7:1), 이러한 상황가운데서 서로 다른 기록을 남긴 것이다. 20, 21절 복이 Makavrioi(마키리오이) '복된, 축복된, 행복한'의 뜻으로 공관복음서에 30번 이상 나온다. 그 중에 두 번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태, 누가복음에 나왔다.예수님은 자신을 따를 때 그 속에서 복을 받거나 행복한 네 가지 조건을 말씀하셨다. 20절 ① 가난한 자 21절 ② 주린 자 ③ 우는 자 22절 인자를 인하여 ...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를 말씀하셨다. 예수의 말씀을 듣는 이 사람들은 마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 누가는 '가난한'이라고만 함으로 물질적으로도 가난함을 드러내었다. 누가는 예수를 따랐던 사람(제자)들이 모든 것을 떠났다는 것므 두 번이나 언급하였다(눅5:11, 28). 구약에서도 '가난한 자'와 '경건한 자'가 거의 동일하게 사용되었다(시40:17, 72:2, 4). 세상의 부요 함은 자기 자신이나 그 물질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24-26절에 화 oujai;(우아이)라는 단어가 네 번 나온다. 화 있을찐저는 의미 전달이 잘 안 된다. 이 말은 '슬픔의 탄성'이며 동정과 애도의 표현이다. 이 부분은 의미 전달을 위해서 약간의 의역을 할 필요가 있다. [오! 화로다,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이러한 화가 미칠 사람은 '① 부요한 자 ② 배부른 자 ③ 이제 웃는자 ④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으로 나타난다. 가난한 사람과 상반되는 개념의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다. 반대로 성경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내려지는 어떤 화나 저주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제 웃는자는 예수의 반대편에 서서 예수를 조롱하며 비웃는 자를 가리킨다. 가까이는 현재 말씀을 전하실 때와 십자가에 달리실 때가 있으며 지금까지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 ④의 사람들은 ③의 입장을 지지하는 그런 모든 사람이다. ①-②, ③-④를 두 개씩 묶어서 생각하면 두 그룹의 비슷한 사람에게 경고하고 계신 것이다.
6:27-38 원수를 사랑하라
이 설교는 24-26절의 화에 대한 경고와 저주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는 것이다. 이 사랑은 자연적 감정인 스토르게가 아니요, 낭만적인 에로스도 아니요, 친구간의 사랑인 필리아도 아니다. 예수께서는 ajgaphJJ(아가페)를 말씀하고 계신다. 이 사랑은 사랑할 수 없는 자에 대한 사랑이요, 사랑을 받을 만한 행위와 무관한 사랑이요, 사랑의 대상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랑이다.이러한 수준 높은 사랑은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신체적인 폭행을 예로 들어 설명하신다. 29절 뺨 siagovna(시아곤)은 뺨보다는 '턱'에 가깝다. 뺨을 후려치는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치는(tuvptontiv)은 '주먹으로 치다'이다.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하여 때려눕히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강하게 얻어맞고도 그 피해를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자 적인 의미에서 뺨만 돌러대는 것만이 최선의 길은 아닐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만 돌려대는 것은 오히려 상대방을 약오르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요점은 사랑이다. 그래서 것 옷과 속옷의 이야기를 또 하신다.
옷(의복)속옷 : 짐승의 가죽이나 털 혹은 말총이나 아마포 등으로 만들었으며 자루 모양으로 발목까지 오도록 되었으며 서민층에서는 소매 없이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자들은 집안에서만 그렇게 입고 외출할 때는 별도의 옷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은 최소한 한 벌 이상 갈아입을 옷이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눅3:11).겉옷 : 길고 헐렁한 옷으로 낮에는 외투로 밤에는 담요로 사용하기도 했다(막14:51-52). 일반 서민들은 이 옷을 쉽게 가질 수 없었다. 띠 : 속옷이나 겉옷이나 대부분 걸치는 형식이 되다보니 띠는 필수였?. 일반적으로는 가죽으로 만들었고(마3:4), 고급품은 아마나(렘13:1) 실크로 만들었으며 수장식물로 된 것도 있었다. 허리띠의 중간 곧 허리춤 부분은 겹으로 되어 주머니로 사용했으며(삼하18:11), 칼을 차는데도 허리띠가 이용되었다(삼하20:8).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단단히 준비하는 것을 '허리띠를 두른다'는 말로서 표현하기도 한다(시18:39, 엡6:14).두건 : 팔레스타인의 강렬한 햇볕과 모래바람으로 인해 두건은 필수품 중의 하나였다. 두건은 주로 터어번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마나 목면으로 만든 두꺼운 직물로 머리에 여러 번 겹쳐 두르는 것이다(사3:23). 유대인들은 공석에서는 항상 터어번을 쓰는 것은 예의로 되어있었다.신발 : 오늘의 구두와 비슷한 신발도 있었지만 이런 것은 사치품에 속했고 일반적으로 나무나 가죽으로 만든 바닥에 가죽끈을 메어 발에 묶는 샌들 형식이었다. 세례요한은 예수께 대하여 이 신발끈 묶기도 감당키 어렵다고 했다(막1:7). 31절 남에게 대접하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 원리는 인생의 모든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 황금률(黃金律)이다. 이러한 사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시대에서나 있었던 진리의 기본이다.35절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mhde;n ajpelpivzonte'(메멘 앞엘피존테스)는 '소망이 없다고 포기하여 버리지 말고'란 뜻도 있다.38절 주라 divdote(디도티)는 동사로 '받기를 바라지말고 먼저 은혜를 베풀라'는 뜻으로 값없이 주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3:16에 '독생자를 주셨으니'에 같은 말이 사용되었다.
6:39-45 비판받지 말라
이 말씀은 31절의 추가적인 설명이다. 41절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로 비유하신다. 이 비유는 예수의 어린 시절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도와 목수 일을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목수 ?을 하다보면 '티' kavrfo(칼프호스)톱밥이 눈에 들어가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것을 대들보에 사용하는 목재 들보 doko;n(도코뉘)로 비유함으로 위선적인 면을 날카롭게 지적하신다.
6:46-49 반석 위에 지은 집
46-49절은 17절부터 이어지는 평지 수훈 전체의 결론이다. 예수께서는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가며 이제 직접 그 사랑을 실천에 옮기도록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여 주여 하면서도 ... 행치 아니하느냐고 반문하심으로 행함 없이 입으로만 주님을 사랑하는 그런 외식에 대해서 다시 지적하신다. 마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가리라(마7:21)고 하였다.47절에는 신앙의 원리를 찾을 수 있는 세 가지 동사가 나온다. 나아와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요1:12), 듣고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는 것(롬10:17), 행하는은 실천하는 것(약2:17)을 말한다.48절 깊이 파고는 다른 모든 곳이 마찬가지 일수 있지만 특히 팔레스타인의 건축에서는 깊이 파지 않으면 그 지역에 집중적으로 여름에 폭풍이 쏟아지고 나무가 별로 없는 비옥한 땅과 언덕이기 때문에 기초가 든든하지 않은 집은 쉽게 쓸려 내려가는 일이 있다.49절 주? 없이 흙 위에 집은 한마디로 부실 공사다. 마태는 '모래 위에'(마7:26)라고 한다. 모래가 더 나쁜 상태를 말하지만 흙이라고 그 의미가 약화되지는 않는다. 탁류가 부딪히매 이스라엘은 건조한 지역이지만 장마철에 쏟아져 내리는 비는 매우 강하다. 이 비에 쓸어 내리는 흙탕물을 말한다. 영적인 의미에선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될 시련과 시험을 의미한다(고전3:11-15).
누가 7장 주석
7:1-10 백부장 하인 고침
마8:5-13, 요4:43-54 비교하라가버나움에서 있었던 백부장 하인의 병 고침 사건에 대해서 누가는 이방인?게 관심 있는 저자로서 흥미 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누가는 이 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2절 백부장 @Ekatontavrcou(헤카톤트알쿠) '백명의 지휘관'을 말한다. 로마의 군대는 백부장(대위) 아래는 십부장(하사)이 있고 위로는 천부장과 패권자가 있었다. 대대는 여섯 중대(백 인대)로 이루어지고 한 군단(a legion)은 10개 대대로 편성되었다. 어떤 백부장이라고만 소개되어 정확히 이 사람의 신상은 알 수 없으며 주석가들의 추측은 무성하다. (렌스키는 평화로운 시기에 가버나움에는 로마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장교는 헤롯 안디바의 용병이었고, 그의 군대는 다 민족 외국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은 자신의 부하를 다루는 입장에서 자신들의 행동이 신중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이를 뒷받침하듯 신약 성경에 소개된 이들은 모두 좋은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다.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책임자도 백부장 이었는데 눅23:47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고 나온다. 그리고 사도행전 10:1, 22, 21:32, 22,25, 26, 23:17, 23, 24:23, 27:1, 6, 11, 31, 43에도 나타난다.사랑하는 e[ntimo'(엔티모스) '존경하는, 가치 있는, 덕망 있는'의 뜻이다. 종 마태는 하인 pai''(파이스) '소자'라고 했지만 누가는 솔직하게 dou'lo'(둘로스) '노예, 종'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떤 연유로 이 집에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종의 신분인 이 하인은 상당히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는 이 백부장의 믿음은 대단한 것이 분명하다.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누가는 어떤 병인지를 밝히지 않았으나 마태는 중풍병(마8:6)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가 죽게 되었다고 기록함으로 그의 병이 심각한 상태임을 나타내고 있다. 3-5절 장로 몇을 presbutevrou'(프로스뷔테루스)로 복수형 '장로'를 사용함으로 [장로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이 장로들은 백부장의 신상을 이야기했다. 5절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 회당을 지었나이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미리부터 백부장은 예수께 보낸 장로들을 잘 알고 있었으며 백부장의 이러한 청에 장로들은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이다.백부장이 장로들을 대신 보냈던 것은 아마도 로마 군인의 신분으로 예수께 다가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신중한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유대인 장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께서는 6절 함께 가실새 백부장은 이 집에 거의 도착을 했을 때쯤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다. 자신은 이방인 군인이고 예수께서는 메시야인데 감히 자신이 예수께 나설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덧붙여 설명하기를 8절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고백했다.7절 말씀만 eijpe; lovgw/(에이페 로고)은 [말씀으로 명령하소서]이다. 예수께서는 귀신 들린 자들을 고치실 때도 모두 명령으로 고치셨다. 이 백부장은 당연히 예수께서 폭풍도 잔잔케 하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신 사건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럼으로 자신의 하인의 병도 예수님의 말씀(명령) 한마디면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예수께서는 이 백부장의 믿음을 9절 기이히 여겨 ejqauvmasen(에다우마센) '놀라다'로 기대 밖의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고 하셨다. 마태는 이 부분에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였다. 누가는 이 말씀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명령은 이루어졌을 것이다.10절 강건하여졌더라 uJpostrevyante'(휘가아니논타)인데 '뒤돌리다, 원래대로'란 뜻인데 여기서는 '이미 병이 낳았다'는 말이다. 마5:31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와 같은 상태이다. * 이 사건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상세히 관찰해야 한다. 누가는 상황적인 면을 상세히 기록했으며 마태는 병고침에 관한 부분을 상세히 기록한 것이 차이가 있다. 마태는 백부장이 예수께 직접 온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것은 생략이라고 보이며, 이 부분에서는 누가가 장로들을 대신 보낸 것을 자세히 다룬 것으로 보인다. 병명을 알려준 것과 마8:13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를 추가한 것은 마태가 더 상세히 다룬다.
7:11-17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림
이 사건은 누가복음에만 언급된 기사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기간동안에 세 번 죽은 자를 살리셨는데 첫 번째 본문이 본 기사이고 두 번째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눅8:41-42, 49-56), 세 번째는 '나사로를 살리신 일'(요11:1-44) 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그리스도가 부활의 주요 그 자신이 생명이심을 확증하는 사건들이다.누가는 먼저 이 사건의 상황을 조용한 곳에서 몇 명이 보는데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11절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라고 기록함으로 공개적? 장소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증인임을 확실히 하고 있다.12절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장지로 가던 과부의 독자 상여를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과 상여의 무리들이 마주치게 되었다. 성의 많은 무리가 따른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의 슬픔을 함께 애도하고 죽은 독자나 이 과부가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것 같다. 독자를 잃은 과부의 슬픔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이 여인에게 예수께서는 울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는 이미 마음속에서 그를 살리고자 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 이유를 몰랐다.14절 관에 손을 대시니 율법에 의하면 관에 손을 대는 것은 부정한 것이었다(레22:4, 민19:11). 그러나 이미 예수께서는 그러한 율법을 초월하고 계신 분이었다. 일어나라 ejgevrqhti(에겔데티)는 말은 죽은 자를 살리실 때 모두 같은 명령을 사용하셨다(마17:7, 막5:40, 눅8:54, 요11:43).
7:18-23 세례 요한의 질문
마11:1-19, 14:1-21 비교하라세례요한은 1년도 못되는 짧은 사역의 기간을 보냈는데 그는 갑자기 사형에 처할 위치에 있었고 감옥에서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오실 메시야가 분명하다면 자신을 구원해 주고 그가 부르짖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에게도 별로 관심이 없고 세상을 심판하실 어떤 의지도 보여주지 않고 계셨다. 자신은 감옥에 있는데 그저 병자들이나 고쳐주고 다니는 그런 예수를 보고 답답함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그는 이런 답답함을 인내하지 못하고 예수께 제자를 보내 질문한다. 누가는 세례요한이 옥중에 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는다. 이것은 마태가 밝혔다(마11:2).19절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는 요한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했지만 흔들리고있는 증거이다. 오실 그이는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다(시40:7, 시118:26, 단7:13).21-23절 예수께서는 요한의 질문에 현재 그의 사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말함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고 있다. 소경(사29:18, 사35:5 -> 마15:31, 막10:46-52), 앉은뱅이(사35:6, 사61:1 -> 마15:31), 문둥병(사61:1 -> 마8:3, 눅17:14), 죽은 자와 가난한 자(사61:1 -> 눅8:54, 눅4:18)에게 구원이 베풀어지고 있다.23절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 o}' eja;n mh; skandalisqh'/ ejn ejmoiv(호스 에안메- 스칸달리스데 엔 에?이)는 문맥으로 보아 특정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부정적 관계의 절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때부터 현재와 미래까지 계속되는 '경고 성이 섞인 축복의'말씀이다.
7:24-35 요한을 칭찬하심
24절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사람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갔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광야에서는 무섭게 불어 치는 바람은 잘 불지만 흔들리는 가늘 바람과 갈대는 없다. 25절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는 예수께서 요한이 왕궁에 있는 대신이나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26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세례요한에 대해서 증거 하신다. 28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사람에게 있어서 부여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는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을 구분하는 경계선을 그으셨다. 이 말이 자칫 요한 개인의 위치를 축소시키는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은 옳지 않다. 예수께서는 요한과 예수 자신(하나님의 것)을 비교하여 말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교훈하기 위한 비교인 것이다.
7:36-39 한 여자가 예수께 향유를 부음
이 부분은 예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사건은 십자가 사건 바로 직전에 있었던(마26:6-13, 막14:3-9, 요12:1-8) 사건과 유사하다.(학자들은 같은 사건으로 보는 경우도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다른 사건으로 보는 학자들은 사건의 시기가 전혀 맞지 않는 다는 것이며 이런 일은 당시에 일반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 사건을 같은 사건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누가는 모든 사건을 발생한 순서대로만 편집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다른 복음서에 다 기록된 이 사건이 누가복음에는 또 다른 곳에 비솽한 사건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복음과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다른 사건들에서도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의 견해는 언제나 그랬듯이 어느 경우가 옳다는 것에 무게의 중심을 두지 않고 다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고자 함에 있다.)마가복음의 경우를 참고하라
7:40-50 두 빚진 자의 비유
42절 탕감하여 ejcarivsato(에카리사토) '취소하다, 무효화하다, 용서하다'의 부정 과거형이다.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행하여졌음을 말하고 있다. 원어의 단어는 눅7:21, 빌2:9에도 나타나지만 한글성경에는 비슷한 단어로 변역 된 것이 없다. 눅7:42, 43에는 '탕감'으로 엡4:32, 골3:13에는 '용서'로 나온다.47절 많은 pollaiv(폴라이) '수많은, 허다한'의 뜻으로 모두를 내포한다. 아무리 크고 많은 죄라 할지라도 모두 사하여졌도다 ajfivetai(아페온타이) 완료형 동사로 모든 죄가 사해져서 온전한 상태가 되었음을 말한다.50절 구원하였으니 sevswkevn(세소켄)는 완료형으로 이미 구원받은 상태를 말한다. 향유를 부은 행위에서가 아니라 이미 그의 마음에 구원을 받을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다만 예수께서 이미 확보? 구원을 선언하신 것이다.
누가 8장 주석
8:1-15 씨뿌리는 자의 비유
마13:1-23, 막4:1-20 비교하라예수께서는 사람들의 틈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육신 적으로 힘든 사역 기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은 아주 분위기가 좋다.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자 나왔다. 그 장소는 갈릴리 바닷가 해변이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달하시기 위해 좋은 강단을 생각해 내셨다. 그것은 배를 띄어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여 그 배에 서서 말씀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닷가에서 불어오는 산산한 바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육지에 앉아 말씀을 듣는 청중들에게 아주 조용하고 마음 깊게 새겨들어 갔다. 그 바람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불어오는 줄 믿습니다. 씨와 씨뿌리는 자는 인자(예수님)이다(마13:37). '내가 야곱 중에서 씨를 내며 유다 중에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나의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 거할 것이라'(사65:9)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눅8:11)

하나님의 말씀(씨)은 이런 곳에 뿌려졌다.
길가 = 새들이 먹음
돌밭 = 뿌리가 없으므로 마름
가시떨기 위 =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음
좋은 땅 = 30배 60배 100배의 결실

씨를 뿌릴 때는 최대한 좋은 땅을 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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